사진일기

삼세대의 결혼 (三世代의 結婚)

골안 2011. 9. 18. 14:10

* 2011,09,17,  굿모닝 씨티 8층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4번출구)

 

* 1 세대 모두 20 대  그는 1950년 6 25 동란 ,,, 국군이 북한군에 밀려 낙동강 까지 갔을무렵 유엔군의 도음으로 38선을 넘어 북진  했을때  우리는 진남포에서 미군 수송선을 타고 남한에 왔지만 그는 대동강을 건너 육지로 힘들게 남한에 왔다

 

* 우리는 부산에서 합류했다  ,, 생명을 부지하고 동란이 끈나면 딴세상이 되어 고향으로 갈생각 만으로 ,,부산항 3 부두에서 노동자로 하역 작업에 임했다

*  단칸방 에 6 명이 방바닥의 요는 고사하고 이불 한장으로 밤을 지 새웠다  20 대 나이에 한참 자다  다리를 진눌어 깨어보면 내 다리 위는 어러 다리가 겹쳐 있었다  이렇게 어러번 반복하며  나날을 보냈다

 

* 그는 우리의 리더 였다 엄마의 역활을 해 주었다

그는  자기는 짝 짝이 싼 신발 , 우리는 온전한신발을 사 줬다  지금 사람들은 짝 짝이 신발을 잘모른거다 그때는 한짝이 크고 한짝이 작은 신발도  한컬에로 짝 지어 팔았다

 

* 그당시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의 원조 요청으로 먹을거며 입을거며 모두 원조품에 의존했다  

 

* 꿀꿀이 죽  미군들이 버린 음식 찍꺼기 이를 수거해 끌인것이 꿀꿀이 죽입니다

부산진 부두 인근 먼지나는 길까에서 ,,,,먹다보면 담배 휠터 와 종이 성냥 개피를 골라 내기도 했다

그나마 미군 음식 찌거기 있었기에 허기진 배를 달랠수 있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기가 힘이 들었을때다

 

6 25 동란이 미쏘 협정으로 정전이 되고 서울로 수복이 되어  그는 공무원이 됬다

공무원이 라는 말뿐이지 하루 3끼 밥 먹기도  힘들었다

 

그는 2 세대 아들 셋을 뒀다 그 2세는 모두 성장 햇다

 

 그는 고희를 넘겨 세상을 떠나다  그의 생전에 비석을 세워줄려든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은 없다  그의 희생 정신은  우리들 가슴에 이명이 다 할때 까지 남을것이다

 

2 세의 맏 아들 은   딸  둘을 뒀다

작은딸  소희 가  오늘 결혼식이  3 세대의 결혼이다

 

 진심으로 축하 합니다

 

 

 *   소 희의 결혼 식

 

↓  온른쪽  소희 아빠 ,중  소희 언니 , 죄측이  두딸의 엄마 너무 장하다

 

 

 

 

 

 

 

 

 

 

 

 

 

 

 

 

 

 

 

 

 

 

  1 세재분들

 

 

* 오늘 3 세대의 결혼식을 보면서  내 80 평생에 화환이 그리 많고  하객이  줄을 잇는것을 처음 봤다

이런 자리가 있기 까지는  배려과 희생정신에  찬사를 아낄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