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 발상지


새마을운동은 70년대의
• 새마을 사업 발상 기념비문
멀리 아침햇살이 비학산 영봉위로 떠오르면 운주산 뻗어내린 장봉산 기슭에 서광이 빛난다. 넓게 트인 현내벌에 오곡이 무르익고 남북으로 길게 흐르는 기계천 물줄기 따라 어래산이 기어드는 천혜의 길지 문성동은 옛부터 산자수려한 이름난 고장이다. 인심이 순후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신라시대 에는 기계현 소재지로 고색이 창연한 마을이기도 하다.
양지바른 성산 비탈에 논밭 갈아 연명하며 샘물 길어 물 마시던 소박한 농촌 마을이었다. 그러나 시대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가난에 찌달려 오던 이곳에 조국 근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1970년 가을 어느날, 조용하던 문성마을에 굶주림을 물리치기 위한 “절대 빈곤 퇴치 운동”이 일어났다.동장 홍선표를 중심으로 청년회 부인회를 조직하여 문성동을 잘 살게 하기 위한 마을 공동사업과 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하기로 계획하고 당시 기계면 자원지도자인 이석걸의 자문을 받아 일차로 초가지붕을 스레트로 개량하고 흙담을 블록 담장으로 고쳐서 오랜 세월동안 때묻은 가난의 껍질을 벗기기 시작하니 가가호호 앞 다투어가며 이 사업에 호응하였다.
이에 2차 사업으로 마을회관 일동과 구판장을 건립한 후 마을 진입로 400미터를 개설하니 초라하던 주위환경이 새로운 모습으로 부각되었다. 이러한 선진마을 발전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자 1970년 늦은 가을, 문화공보부에서 “자조의 마을, 문성동” 이란 홍보영화를 촬영, 전국에 방영하게 되었다.이러한 사실을 알고 선진지 시찰차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하루에 수백을 헤아렸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듯이, 앞서가는 문성마을이 청와대까지 알려져서 1971년 8월5일 경제동향 보고시에 동장 홍선표가 자립마을 조성 공로자로 훈장을 받은 영광을 차지 하였고 그해 9월 십칠일 박정희 대통령께서 국무위원을 대동하고 전국 시도시장 군수회의를 문선동 현지에서 주재하시고 마을의 발전과정과 주민 협동정신에 대해 크게 관심을 표명한 뒤 마을을 답사 후 마을 공동사업과 환경개선사업을 비롯한 주민의 열기에 감탄하고 한 사람의 뛰어난 지도자의 희생적인 노력으로 기적을 이룬 현지상황을 청취하시고 “하면된다” 는 의지를 천명한 후 문성마을의 성공사례를 전국에 소개토록 함으로써 새마을의 햇불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께서본동을 방문하시고 동민의 숙원인 문성교량 사업과 전기 가설 사업비를 지원 약속하므로써 동민은 혼연일체가 되어 마을 근대화 사업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결과 1971년 12월에 길이 126미터, 폭 6미터의 문성교 가설 공사를 완공함으로서 미지의 땅 문성동이 새로움을 창조하는 신비의 마을로 이름 나 새마을이란 단어가 세계 각국 사전에 기록되기도 하였다.
오랜 전통과 유서 깊은 우리 문성 마을은 예로부터 동민의 단합과 화합을 바탕으로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의롭고 예절 바른 마을로서 언제나 밝은 꿈이 서려 있는 미래지향적인 곳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발전을 기약하고 조상들의 희생적인 봉사와 인내심을 이어받아 아름답고 풍요로운 고장 건설을 위한 길잡이로 삼고자 동민의 뜻을 모아 이곳에 기념비를 세우노니 고요한 밤 하늘에 빛나는 샛별처럼 문성이여 빛나거라! 길이길이 밝게 빛나거라!